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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후기]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 240910 - 241006About SHINee MINHO/Schedule 2024. 10. 18. 00:40
※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접해본 직업들은 대부분 나의 장래희망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어떤 날은 연구원이었다가 어떤 날은 사진작가였다가 변덕스럽게도 어떤 날은 특수한 것 없이 회사원이었다가 (물론 회사원도 많은 분야가 있지만 그땐 그저 회사원이었다.) 어떤 날은 그저 낭만을 찾는 것이 멋있어 보여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을 여행에 다 털어버리는 방랑자가 되었다. 그렇게 유난스럽게 변덕을 부리던 나의 장래희망 중에서 내 호기심에 접근하지 못한 직업은 '배우'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영화를 좋아했음에도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지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배우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연극을 처음 만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겨울이었다. 극장 밖의 찬바람과 대비되는 좁고 아늑하고 조금은 건조한,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오로지 육성으로만 극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금은 놀라웠다. 여태까지의 내가 본 '극'이란 소리가 크고 마이크가 있고 2,3층까지 높고 웅장하게 되어있는 장소에서 장황한 줄거리를 나열하는 느낌이었다면, 그날 본 연극은 여태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 무언가였다. 그날의 연극은 온전히 배우들의 에너지로만 이끌어가는, 생애의 단 일부분을 잘라내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예술에 가까웠다. 굳이 표현하자면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일종의 '펜시브'같은 느낌. 아무튼 그날 이후로 연극이란 뮤지컬과는 다른 이런 느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호가 연극을 한다고 처음 발표가 났을 때, 모두가 그렇겠지만 많이 놀랐다. 매체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배우 최민호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히 다른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소극장 연극은 기간이 길고 연극이 잦으니 다른 스케줄을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바쁜 스케줄을 가진 아이돌이 실현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호가 연극을 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첫 연극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라는 것도 놀라웠다. 그동안 민호가 맡아오던 배역들과 사뭇 다르게 느껴져서이기도 했고,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 자체가 접근하기에 어려우니 연기 또한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뭉클하고 벅찼다. 민호가 보여주는 무대 위의 살아 숨 쉬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우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첫공이 끝나고 나서 커튼콜을 치며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우리 민호가 너무 잘해서. 내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 무대 위를 생생하게 날아다녀서. 네가 보여주고 싶은 연기가 이런 것이었구나 싶어서. 너는 이래서 연극을 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들을 되뇌고 되뇔 만큼 첫 연극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게 민호는 참 잘했다. 객석에 앉아있던 모두가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 그래서 민호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저 최민호예요.'라는 말을 너는 절대로 그냥 내뱉지 않는구나, 싶었다.
민호는 알까,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내가 참 많이 미안했다는 걸. 앨범 내줘, 무대 해줘라고 늘 조르듯이 이야기했던 것이 약간은 후회가 되었다. 저렇게 잘하는데, 저렇게 좋아하는데, 저렇게 잘 어울리는데, 난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은 생각도 안 하고 늘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너에게서 찾는구나, 싶어 져서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그릇이 작은 나는 언제쯤 네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예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중 밸과 에스터는 계속해서 연출을 기다린다. 무대 위의 사람들은 '고도'라는 어떠한 것을 기다리지만 그것은 연극이라는 것에서 보여주는 허상의 목적지이다. 밸과 에스터는 다르다. 그들은 기다리는 것이 그들이 하고자 하는 삶의 일부이다. 무대 위에 사람들은 고도가 오늘 오지 않는다고 해도 조명이 꺼지고 막이 내려오면 고도는 하등 필요 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밸과 에스터는 연극이 끝나도 기다림을 멈출 수 없다. 그들의 삶에서 기다림이란 삶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인다.
밸을 보면서 어릴 때, 멋모르고 회사를 다니면서 꿈을 이뤄보겠다고 마음먹었던 내가 생각이 났다. 할 수 있어, 난 잘 될 거야, 난 나를 믿어, 그런 생각을 가진 때가 있었다. 민호가 연기한 밸은 그렇게 보였다. 잘 모르기에 희망에 찰 수 있고, 잘 모르기에 잠깐의 행복한 상상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연극을 보는 내내 밸이 부러웠다. 저렇게 순수하게 나도 무언가를 꿈꾸며 살았을 때가 있었는데. '꿈'이라는 걸 거부감 없이 사람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있었는데.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금 슬퍼졌다. 그 꿈은 나에게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그것을 과연 지금도 내 꿈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밸은 저렇게 기다리고 연습하고 꿈꾸면서 자신의 꿈을 위해 참고 노력하는데 나는 지금 내가 말하는 오래된 꿈을 위해서 저렇게 행동하고 있나, 행동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결국 이룰 생각이 없다는 것인데 그럼 그것을 내가 꿈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만약 그 꿈이 정말 소중하고 바라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뒤로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밸과 에스터처럼 기다리고 기다리기만 하는 일을 나는 반복할 수 있을까.
밸에 비해 에스터는 굉장히 기다림을 잘 이겨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속은 곪았다. 에스터는 손바닥 뒤집듯 말을 계속해서 번복한다. '무대에 올라갈 수 있냐'는 물음에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다가도 '우린 못 올라가, 기다리는 게 우리의 일이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주 작은 것에도 울분을 터뜨리며 구두로 상자를 내리치고 작은 행동이나 짧은 문장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설움에 잠긴다. 에스터는 꿈을 좇는 것을 선택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밸을 보며 부러워하다가도 에스터를 보면 현실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환상을 버리고 현실세계로 나오는 것이 용기가 있는 행동인지, 아님 꿈을 이루기 위해 미련할 만큼 환상 속에 살며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인지. 아마 잘은 모르지만 전자든 후자든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 같다.
밸에게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떠났을 때, 그 선택은 사실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관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무대를 꼭 서야 할까 싶다가도 공연을 중단하고 간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순간은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삶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명확하게 떨어지는 것보다 그냥 그 순간에 마음이 가는 대로, 이렇게 해야 될 것만 같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들이 모여 나를 살아나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 연극의 마지막 부분은 연극이 끝나는 그날까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밸이 받아온 소속사와의 계약서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화장실에서 15분 만에 결정한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일까. 그렇게 캐스팅을 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일까. 자리에 앉아 어리둥절한 눈으로 뒷장을 읽는 모습에 제대로 읽지도 않고 좋아서 싸인부터 했구나, 싶어 져서 막이 내려오고도 계약서를 호기심어리게 쳐다보다 봉투의 입을 맞추는 밸의 눈망울이 마음에 응어리지듯 남았다.
그냥 밸과 에스터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밸이 받았던 계약서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정말로 좋은 회사여서 밸이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꿈에 대한 환상과 희망이 가득한 사람을 속이려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꿈을 포기하는 세상이 당연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을 포기한 사람들이 꿈을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핀잔주지 않았으면 좋겠고, 꿈꾸는 사람들을 응원해 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저 살기만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는 꿈이라는 낭만적인 것을 품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About SHINee MINHO > Schedu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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